
공포는 항상 그녀의 어깨 바로 뒤에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으려다가 그녀는 쇠약해졌다.
두려움에 옷을 입혀야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열병, 쥐, 실업이라는 형태로.
직접 보는 것은 그녀에게 금기였다. 그 이상한 곳에 매년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
-그레이엄 그린, 『권력과 영광』, 55쪽
어린 시절에는 문이 열리고 그 문으로 미래가 들어오는 한 순간이 존재한다.
뜨겁고 습기 찬 강의 하구와 독수리도 그 휴지통에 숨어 있었고,
그는 그냥 끄집어 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주위의 찬장이며 서가 등 모든 곳에는 공포와 몰락이 숨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걸 볼 수 없었다. 그 점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21쪽
남자든 여자든 주의 깊게 그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불쌍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신과 꼭 닮게 만든 얼굴이라 그렇다.
눈가의 주름들, 입의 생김새, 머리카락이 자란 모양 등을 보노라면
그를 미워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증오란 상상력의 결핍일 뿐이다. -212쪽
지옥과 천국 같은 단순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움직였다.
책도 없고 학식 있는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지자,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기억들이 벗겨지고
신앙의 신비에 대한 최소한의 윤곽만이 남게 된 것이다. -108쪽
그는 한 번도 스스로 이끌어 보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의 모호한 신념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느꼈다.
평화, 영광, 사랑 같은 단어들. -301쪽
이제 시간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온 셈이었다.
내일도 없고 어제도 없이, 그저 존재만이 영원하리라. -295-296쪽
『권력과 영광』은 오래된 땀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소설이다.
따뜻함보다는 습한 기운으로 가득하고, 성스럽기 보다는 세속적이며,
소박하기 보다는 욕망으로 가득하고, 기쁨과 안락보다는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지만
어느 이야기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단어에서 따온 제목, The power와 The glory가 등장하는 부분
바로 앞의 구절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사실 이 소설은 유혹과 악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사제는 어둠의 실체를 보고, 겪은 후에야 인간에 대한 진실 어린 애정을 품을 수 있었고,
창조주가 빚어낸 세상의 아름다움과 선량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펼쳐져 있었던 영광에 도달했다.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유혹과 악, 권력과 영광 이 대조적인 두 쌍에 대한 믿음이
지상과 천상에 각각 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지상에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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