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는 영혼을 개어 그리는 장르화이다.
그 안에는 모델의 영혼도, 화가의 것도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의 것도 함께 녹아 있다. 초상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 몇 권 있지만 그 가운데 인간의 삶과 예술의 경계, 환영과 실재,
그 사이에 얼룩져 있는 혼란과 욕망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은『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양심을 지킨 순수한 예술가 바질 홀워드,
쾌락의 세계로 추락한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럴듯한 달변으로 도리언을 미혹시키는 헨리 경.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엮어진다.
실제 삶이 아닌 허상을 실재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판단 때문에 도리언은 현실을 부정하게 되고 그가 짓는 죄는 고스란히 초상화에 반영된다.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형상이라 해도 과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는 도리언에게 있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양심이다. 자신이 쾌락에 찌들 때마다 그리고 헨리가 그러했듯 다른 이들을 타락의 삶으로 이끌며 즐거워할 때마다 그의 죄의 대가가 덧칠해져 그림은 흉측하게 변모한다.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도리언은 많은 영혼을 죽이게 되었다. 여전히 소년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에게 모든 것을 안겨 주었고 동시에 모든 것을 빼앗아 파멸로 이끈 젊음과 아름다움을 저주하기 시작한 도리언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찢어 버렸다. 초상화만 없어진다면 양심이 누르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한 것을 보면 도리언은 마지막까지 실제 삶과 예술의 저울질에서 후자에 무게를 느꼈던 것 같다.
헨리 경의 혀를 빌려 작가는 당대 낡을 대로 낡아 버린 영국의 시대정신과 도덕적 잣대를 비판한다. 그의 혀끝에서 흘러나오는 신랄함과 쾌락주의에 바탕을 둔 온갖 궤변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작가가 유지하고 있는 태도 덕분이다. 이 점은 오스카 와일드의 많은 작품을 잇는 공통점인 것 같다. 작가는 파멸로 끝나는 장면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지른 일에 대해 때늦은 후회를 하고 심적 구원을 받는다는 결말에 속해 있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침없이 소유했고 그것이 가져온 결말에 담담했다. 그가 만들어낸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들을 지켜보며 묘한 짜릿함을 맛보는 나 자신도 도리언을 비난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