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에 등장하는 많은 에피소드 중 널리 잘 알려진 부분인 <허영의 시장>.
윌리엄 새커리가 『허영의 시장』Vanity Fair 이라는 제목으로 방대한 소설 한 편을 써 냈을 만큼 큰 영향을 준 대목이다.
오늘날 이 부분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매력이 큰 에피소드이다.
특히 작가가 이시장의 양상을 설명해 놓은 구절이 내 흥미와 호기심을 잡아 당겼다.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담고 있는 이 시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온갖 캐릭터들을 만나보면 버니언의 표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역할만 하는 가면들이 눈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제목만 보자면 하늘에 이르는 길 이라는 의미의 <천로역정> 이지만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빚어낸 탁월한 묘사와 날카로운 면모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천로역정』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고
독실한 신앙을 지닌 사람이라면 순례자들의 영적, 육적 고행을 지켜보며
자신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삼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두 시각으로 『천로역정』을 맛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