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청춘아, 너는 날 휘몰아치더니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이제 한 걸음도 내디딜 곳이 없다……>
그런데 정말로 나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가?
정말로 이 땅에서는 내가 할 일이 없는 걸까?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아무리 자기 자신을 자신의 눈앞에서 비하하려고 애를 써도
내 속에 누구에게나 다 주어지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
왜 이 힘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걸까?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얼마를 살든지 간에 항상 당신의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것을 따르십시오.
인생이 흘러가는 범위는 단순할수록, 좁을수록 더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새로운 측면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변화가 제때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루진』가운데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 뚜르게녜프의『루진』
왜 자네는-정말 이상한 사람이야!-뭘 하든지 간에
항상 자기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고야 마는가?
왜 자네는 아무리 기름진 땅이라도,
드미뜨리 루진은 탁월한 말솜씨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을 감화시키는 존재이다. 그의 정신세계에 발을 담가본 사람이라면 깊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루진은 열정의 늪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였다. 진리의 추구와 논리로 타오르는 가슴을 지녔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정작 본인은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정신적 방랑자이다. 루진의 이러한 성향은 결단력 부족이나 나태 등 개인적인 요인에서 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양산해낸 존재들을 보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이상을 추구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매번 자신의 이상향과 어긋나는 환경을 버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디아스포라 길에 오른다.
루진의 안타까운 삶이 쓸쓸하게 끝나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에필로그에서 그의 남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실천’이 뒷받침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루진의 정신적 삶을 사뭇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루진의 마지막 여정은 더 이상 어두컴컴하고 질척이는 길이 아니었다. 첫 실천이 그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지만 이는 다음 세대의 많은 실천을 품을 씨앗이 되었기에 특별했다.
잉여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길 외에는 선택할 수 없었던 특정 시대의 많은 루진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따라다닌 이 시간을 평생 아끼며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루진,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역시 뚜르게녜프이다!
신이여, 집 없이 헤매는 모든 방랑자들을 도와주소서!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루진』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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