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름과 순간, 소멸과 재생, 꿈과 현실, 소설과 시, 글쓰기와 책읽기 그리고 나와 너…
고작 십만 단어에 이 세상 모든 관계의 가치를 담은 밀라로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
우선, 다른 세계문학 작품에서는 만나보지 못했기에 신비하다 못해 생경하나
아름다운 표현들과 이야기를 엮어 독자를 단번에 현혹하는 책.
바로 눈 앞에 그려지는 듯 기괴하고 이상하며 꿈을 꾸는 듯한 이야기와 심오한 세계가
아라크네의 두툼한 배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실과 같은 책.
정독하듯 차분하게, 온 정신을 집중하며 읽어 내려가지만 조금 전에 읽은 내용이 뭐였지?
잠시 책읽기를 멈춰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특별한 책읽기를 선사하는 책.
독자가 이어가는 의식의 흐름을 공대신 이리저리 던지지만 남은 단어가 줄어들수록
파비치, 이 사람이 불친절한 작가는 아니구나 안도하게 만드는 책.
읽는 이들이 느꼈을 어느 정도의 당혹감을 다정히 손에 잡고서, 산만한 텍스트에 숨겨진
(혹은 내내 드러나 있었지만 무심하게 지나쳤을) 자신의 관점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글쓰기 태도와
느슨함을 가장한 치밀함, 구성감각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탁월한 작품.
경망하다 욕먹을지 모르지만,
책 꽤나 읽었다는 사람들에게 젠체하며 <너 이 책 읽어봤어?> 물으며 넌지시 자랑하고 싶은
유일한 작품.
이었다, 내가 읽은 『하자르 사전』읽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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