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레제르Jean-Marc Reiser
레제르의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억압받는 자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눈에 비친 대로 세상이 개인에게 무자비하고 잔인함을 묘사했다. 1966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그의 만화집은 이미 상당한 권수에 이르고 있을 뿐 아니라 끊이지 않고 판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그림체가 <한 순간에 그려진 듯하고>, 생략적이며 불필요한 요소가 일체 배제되었다는 것, 극히 가볍고 부드럽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다. 그의 동료였던 카바나는 레제르의 스타일이 무엇보다도 움직임이며 영화적인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볼린스키는 무겁고, 촘촘하며 명암의 대조가 뚜렷한 독일 만화의 흐름에 대해 진정하게 정반대 지점에 위치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카바나는 레제르를 <쉽게 웃는 사람, 웃음이 본성인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증오도 경멸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레제르는 심판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작품에 등장하는 그 악의 없는 괴물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어떤 환상도 없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성을 사랑하고 숭배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수줍고 소박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만화 세계는 거칠고 거침이 없었다. 1941년 레옹 시 넉넉지 못한 유대 인 가정에서 태어난 장 마르크 레제르는 1983년 42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할 때까지 일체의 권위와 제도, 검열 그리고 문명의 위선에 비타협적으로 대항한 현대 프랑스가 낳은 대표적인 천재 만화가이다.

고단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사무원, 육체 노동 등 여러 일을 전전해야 했던 그는 1959년 유명한 포도주 중개상 니콜라 상회에 들어간 뒤 그는 첫 번째 만평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주류(酒類) 판매상 소식지인 『가제트 뒤 넥타르』에서 그가 사용한 필명은 루시용이었다. 퇴근 후의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그의 그림을 각종 잡지에 투고해 보았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가 베르니에, 카바나, 프레드를 만나고 『코르데』에서 만화를 싣게 된 것은 이때였다. 이 잡지는 프랑스 최초의 성인 만화 잡지인 『하라-키리(割腹)』의 <원조>로 간주되고 있다. 이 밖에도 당시 『블라그』, 『발라댕 드 파리』 등을 보면 <지엠>이라는 필명으로 투고한 그의 그림을 찾을 수 있다.

그는 1960년 9월 월간 『하라-키리』 창간호의 멤버가 된다. 이후 20년간은 레제르와 『하라-키리』와 정부 사이에서, 판매 금지, 잡지 폐간, 잡지 재창간을 되풀이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시험해 본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군복무 기간(1961-1962)과 이 잡지의 발행 금지 기간을 제외하면 그는 언제나 『하라-키리』에 작품을 실었다.

1966년 『하라-키리』가 두 번째로 판매 금지된 지 얼마 뒤 그는 혼자서 『암 스트람 그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호를 작업하고 『필로트』에 들어갔다. 레제르의 화풍이 너무 독창적이라고 판단한 르네 고시니-이 주간지의 편집장이었던-는 레제르로 하여금 만화 각본을 써 보도록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프랑스 만화계의 대가들, 즉 라몬 몽존, 조르주 라크루아, 니키타 만드리카, 봅 드 그로트, 장 클로드 메지에르, 믹 델링크스, 앙리 뒤프란, 카뷔, 마르셀 고틀리브, 장 샤키르, 르네 뷔스메, 리코르, 포페와 알렉시스 등등의 만화가의 작업에 각본가의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푸제가 그림을 그린 대히트작 『80개의 개그로 본 프랑스 역사』 역시 레제르의 각본가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레제르는 68년 5월 사태 이후, 『주간 하라-키리』(1969)와 『월간 찰리』의 창간 멤버가 되었다. 『주간 하라-키리』가 발매 금지되자 그를 대체하는 『주간 찰리』(1970)에도 참여한다.

60년대 중반부터 그의 비범한 관찰력과 극도로 단순하게 사태를 정리하는 요령은 점점 정치적인 의의를 획득하게 되었다. 어둡고 무정부주의적인 그의 유머 너머에는 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의 생활상 전체가 가식 없는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그는 이른바 제도권내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 『르 몽드』, 『주르날 뒤 디망슈』, 『라 누벨 크리틱』,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많은 만화를 기고했다. 1978년 그는 앙굴렘에서 알프레드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은『빨간 귀』를 비롯하여, 『우리 아빠』, 『원시인』, 『환상들』, 『여성 만세』, 『야외 생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