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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2 1 (1)(4 3 2 1)
폴 오스터(Paul Auster)
김현우
열린책들
2023년 11월 20일
견장정 / 808 면
978-89*329-2373-4 04840
미국 문학
22,000
 
 
 

  
<나는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만 같다>
폴 오스터 필생의 역작
『선셋 파크』 이후 10년 만에 출간되는 장편소설 

반세기 넘도록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를 넘나들며 발군의 기량을 발휘해 온 폴 오스터. 오늘날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가 국내에서 10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4 3 2 1』은 오스터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크나큰 야심에서 탄생한 역작으로, <폴 오스터 최고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만 같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가디언』, 2017. 1. 20.) 한 편의 대서사시와도 같은 이 성장 소설은 주인공 아치 퍼거슨의 삶을 탄생 전후부터 청년기까지 네 가지 버전으로 세밀하게 그려 내는데, 곳곳에 작가 본인이 살아온 삶이 녹아 있다. 퍼거슨은 네 개의 평행한 삶들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따라 서로 다른 관계와 사건과 우연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며 자라난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경험하는 기쁨, 공포, 욕망, 분노, 혼란은 1950~1960년대 미국의 요동치는 정치적, 문화적 흐름에 섞여 들고, 그렇게 퍼거슨의 이야기는 시대와 개인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작품을 이룬다. 1천5백 면이 넘는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휘몰아치는 드라마, 인물의 생각과 감정이 살아 숨 쉬는 문장이 독자를 단숨에 빨아들여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가능성으로 짜인 네 가지 버전의 삶
요동치는 세계를 통과하며 자라고 또 자라는 퍼거슨의 이야기

아치 퍼거슨, 1947년 3월 3일 출생. 어머니 이름은 로즈이고 뉴욕에서 사진 일을 배웠다. 아버지 이름은 스탠리이고 형들과 함께 가구 및 가전제품 판매점 삼 형제 홈 월드를 운영한다. 퍼거슨은 뉴저지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읽기와 쓰기,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키워 가고, 청소년기에는 동갑내기 에이미를 좋아하게 된다. 그는 냉전, 케네디 암살, 인종 갈등, 흑인 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 등 전후 미국의 역사적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목격한다. 『4 3 2 1』의 <모든 퍼거슨>이 공유하는 몇 가지 배경은 이러하다. 같은 이름, 같은 시대, 같은 시작, 그런데 만약 삶의 세부 사항이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다른 조건이 주어진다면,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하나의 퍼거슨은 퍼거슨-1, 퍼거슨-2, 퍼거슨-3, 퍼거슨-4로 나뉘어 평행선 위에 놓이고, 소설은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시기별로 네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번갈아 펼쳐 보인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일이 한 가지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1권 102면)

여섯 살 무렵 퍼거슨은 참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깁스를 한 채 누워 지내던 중 사고와 관련해 가능했던 경우의 수를 헤아려 본다. 그날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나무 자체가 그의 집 뒷마당에 없었을 수도 있었고, 나무에서 떨어져 팔다리가 모두 부러졌을 수도, 혹은 죽어 버렸을 수도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문장에 『4 3 2 1』의 동력이 집약되어 있다. 오스터는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우리가 사는 하나의 삶과 평행하게 나아가는, 가능했던 다수의 삶들을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퍼거슨의 아버지는 방화범을 쫓아내려다 목숨을 잃거나 혹은 가게 지점을 늘리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어머니는 유명 사진가가 되어 전시회를 열거나 혹은 사진 일을 영영 그만둔다. 어떤 퍼거슨은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어떤 퍼거슨은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하고, 어떤 퍼거슨은 날마다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어떤 퍼거슨은 신발이 주인공인 단편소설을 써낸다. 서로 다른 가능성으로 짜인 이 보르헤스적 미로에는 오스터가 만들어 낸 몇 개의 과거들, 몇 개의 시간들이 공존한다.

우리 곁을 맴도는 삶과 죽음의 가능성
<현실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도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의식이 생긴 후로 줄곧, 그런 갈림길을, 선택받은 길과 선택받지 못한 길들을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각에 걷고 있다는 그 평행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그림자 같은 사람들, 지금 이대로의 세상은 진짜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느낌, 현실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도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2권 729~730면)

퍼거슨들의 취향과 관심사의 세세한 가닥, 인간관계나 진로와 관련한 결단, 작은 에피소드와 굵직한 드라마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미로 안에서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의절하는 퍼거슨, 학교를 빼먹고 「천국의 아이들」을 보러 가는 퍼거슨, 에이미와 연인이 되는 퍼거슨, 지역 신문사에 스포츠 기사를 싣는 퍼거슨이 머릿속에서 뒤섞이고 만다. 한 챕터를 네 가지 버전으로 번갈아 서술하는 돌고 도는 구조, 세부 사항의 세부 사항으로 빽빽한 내용이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이와 관련한 번역-독서 경험을 공유하는데, 어느 순간 그는 <우리는 네 명의 퍼거슨 중 한 명의 삶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퍼거슨이 하나로 뒤섞인 어떤 인물의 삶을 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실제 삶과 더 비슷한 거라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현실과 가능성들이 섞여 있는 모습이…….> 이러한 발견은 <지금 이대로의 세상은 진짜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느낌, 현실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도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품고 살아가는 퍼거슨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공명한다. 하나의 퍼거슨은 가능했던 다른 모습의 퍼거슨들로도 이루어져 있다. 그 모든 퍼거슨은 같은 챕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뚫고 지나가며 나란히 자란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삶은 어디에나 있고, 죽음도 어디에나 있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합류한다.(2권 731면)

<만약>에서 비롯하는 삶의 가능성과 더불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바로 죽음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NPR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4 3 2 1』을 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 <사건 중의 사건>을 밝힌 바 있다. 열네 살, 여름 방학을 맞아 청소년 캠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숲속을 하이킹하던 중 폭풍우가 들이닥치고, 한순간 오스터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쓰러진다. 그는 폭풍우의 한가운데 꼼짝없이 갇혀 친구를 돌보지만, 이미 숨을 거둔 친구는 얼굴이 점차 퍼렇게 변해 간다.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오스터의 관점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진다. 아주 희미한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일, 내게 벌어지리라고는 예상한 적 없는 일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그 일이 평생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고,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겨울 일기』를 비롯한 전작뿐 아니라 여러 인터뷰에서도 고백해 왔다. 그로부터 50여 년을 더 살고 난 이후에야 그는 『4 3 2 1』을 쓰기 시작한다. 가능했던 삶에 관해 쓰는 동시에 가능했던 죽음에 관해 쓰기. 오스터가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3년간 거의 매일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수기로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삶의 가능성만큼이나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 죽음의 목격, 정치적인 죽음, 믿기 어려운 부고, 너무 이른 죽음으로, 즉 죽음의 가능성으로 넘쳐 난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삶의 불확실성과 연약함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농담하기
불타는 세상에서 글 쓰고 말하기

바로 그 점이 퍼거슨이 로즌블룸 씨에게 끌렸던 이유이고, 그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거웠던 이유이다 ― 그가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2권 34면)

삶이 그토록 불확실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까? 누구에게도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고 그건 퍼거슨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가 나름대로 삶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행동 양식이 두어 가지 있다. 먼저 농담하기와 농담을 사랑하기가 그렇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암호처럼 주고받은 농담(엉덩이를 <매일의 의무>라고 부르기), 매번 실패하고 곤경에 처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코미디 콤비 로럴과 하디, 룸메이트 하워드와 작성한 바보 같은 농담의 목록 같은 것들이 그의 인생을 약간은 덜 두려운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같은 농담에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장례식에서조차, 그가 처한 농담 같은 상황이 독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소설 속 농담들은 뭔가가 어긋나거나 삐끗하는 찰나, 미끄러지는 대화, 슬픔과 씁쓸함과 안도감 따위가 혼재하는 상황, 일상과 문화적 레퍼런스 간의 연결점, 질서를 거부하는 터무니없이 작은 움직임 등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데서 비롯하며, 이제까지 오스터가 작품 세계에서 드러내 온 농담에 대한 취향을 총결산해 보여 준다. 무엇보다 『4 3 2 1』은 미국 땅에 도착한 직후 이민국 직원의 실수로 엉뚱한 영어 이름을 얻게 되는 유대인 이민자에 관한 농담에서 시작해 같은 농담을 다시 불러오며 끝을 맺는 소설이다. 그 농담은 퍼거슨이 생각하기에 <한 인간이 삶을 헤쳐 나가는 중에 끊임없이 마주치는 분기점에 관한 우화>이고, <기이하고, 웃기고,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그러한 묘사는 소설 자체에 대한 것으로도, 어쩌면 삶에 대한 것으로도 읽힌다. 

세상이 불타고 있다면 ― 그리고 당신이 함께 불타고 있다면, 그해야말로 책을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닐까?(2권 660면)

모든 퍼거슨이 공통적으로 지속하는 또 다른 행위는 글쓰기이다. 어떤 퍼거슨은 초등학교 시절 닉슨 대통령이 카라카스의 성난 민중에게 공격당한 일을 기사로 작성해 어린이 신문에 싣는다(교장 선생님에게 불려 가 <빨갱이> 기사를 썼다며 야단맞는다). 어떤 퍼거슨은 상실로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회고록을 쓴다(일부분은 다소 과장되었다). 어떤 퍼거슨은 신발이 주인공이면서 홀로코스트를 암시하는 단편소설을 완성한다(문학 선생님에게 혹평당한 뒤 세상을 저주한다). 할머니에게 글자를 배우던 시기에 로젠버그 부부 사형 사건을 편지에 담아낸 때부터 그가 자기 삶과 세상일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글쓰기는 퍼거슨이 하고 싶은 일이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스터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오스터의 글쓰기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그가 어린 시절부터 책과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썼는지를 이야기한다. 소설 속의 소설로 삽입된 「드룬족」은 실제로 오스터가 열아홉 살에 집필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를 정말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매일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 있다. 가능한 대안들 ―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울 수 있을지 ― 을 떠올려 보면 글쓰기는 삶을 보내는 방법으로 정신 나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가디언』, 2017. 1. 20.) 퍼거슨도 오스터도 그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되뇌는 말
비틀거리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러니까 네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지 아닌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거야. 그 모든 사실을 알았어야 하는데, 그 모든 사실을 알 방법은 두 곳에 동시에 있는 것밖에 없고 ― 그건 불가능하잖아.(1권 436면)

다시, <만약>으로 시작하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과 달리 무엇이 가능했을까? 그것들은 말년에 접어든 작가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날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쌓아 올리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 아니었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써낸 『4 3 2 1』에 어떤 선택이 좋았을 것이라거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더라는 정답은 없다. 다만 오스터는 우리가 언제나 삶과 죽음의 가능성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음을 말함으로써 생을 예민하게 감각하도록 한다. 가능성은 우리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에서도 비롯하지만, 실패로 끝날지언정 어째 볼 수 있는 일들에서도 비롯한다. 후자에 관해서라면 퍼거슨이 말했듯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지 아닌지는 절대 알 수가 없>고, 그 사실에는 불안만큼이나 자유가 깃들어 있다. 그러니 수많은 갈림길과 마주해 그저 자신의 선택을 믿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도래했거나 도래할 상실과 함께,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면서 고유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문장들로 이뤄진 『4 3 2 1』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전히 산더미같이 품고 있는 오스터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되뇌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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