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휴가철에 찾아온 북극의 시원한 이야기
북극에 사는 괴짜 사냥꾼들의 비범한 일상을 그린 유머 넘치는 연작 콩트집 북극 허풍담(전3권)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덴마크의 국민 작가 요른Jørn Riel의 대표작이다.
읽는 내내 시원한 상상과 웃음, 휴식과 행복감을 선사해 여름 휴가용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온통 눈과 빙산, 찬바람 몰아치는 북극이 배경이라 계절을 잊게 만들고 심지어 춥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야기는 “빙하를 녹일 만큼” 훈훈하다.
다른 용어로는 형식을 설명할 수 없는 ‘허풍담skrøner’이란 독특한 장르를 탄생시키고, 하마터면 묻힐 뻔했다 출간된 흥미로운 내력을 갖고 있고, 인구 500만에 불과한 덴마크에서 출간될 때마다 평균 25만 부, 때로는 50만 부까지 판매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는 등 여러 가지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강렬한 개성의 인물들이 펼치는 익살 넘치는 해프닝들
북극 허풍담의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소재와 형식, 강렬한 개성의 인물들이 펼치는 익살 넘치는 이야기의 재미에 있다.
세계지도의 커다란 흰 부분,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는 나머지 문명 세계를 ‘저 아랫것들’이라고 부르는 괴짜 사냥꾼들이 산다. 그들은 원주민이 아니라 사냥 회사에서 파견된 나름 직원들로, 자진해서 문명을 등진 사람들이다. 거의 대한민국 반만 한 땅에 서른 명쯤 흩어져 산다. 1년의 반은 밤이고 반은 낮, 온통 눈과 빙하, 여름에도 겨울인 땅에서 살다 보니 제정신이 아닐 때가 더 많지만, 기본적으로 독특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순진남, 궤변가, 잠꾸러기, 귀족, 전직 군인, 주정꾼, 수다쟁이……. 거기에다 1년에 딱 한 번 들어와 사냥된 모피를 수거하고 보급품을 내려놓고 떠나는 수송선, 어쩌다 그 수송선에 동승해 오는 외지 손님, 그리고 흰곰 등 북극 동물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해프닝들을 담은 콩트의 연속이 이 작품이다. 각 콩트는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연결 속에 있다.
“북극이라니,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고?”
황량한 빙원에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사냥꾼 공동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결핍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고, 그래서 더 흥미로운 소동들이 빚어진다. 가장 가까운 여자도 수천 킬로미터 너머에 있기에 어느 날 상상의 여자를 창조하고, 그 상상의 여자에게 모든 사냥꾼들이 마음을 빼앗긴다. 성격적 결함 때문에 동료와 오래 못 가는 사냥꾼은 동물을 이상적인 동료로 선택하기도 한다. 외지인이나 신참이 와서 문명 세계의 관습과 사고를 계속 고집하려 들면 그들의 표현대로 ‘정상적인 세계관’을 심어 주기 위해 곤욕을 치르게 만들기도 한다. 사냥꾼 동료가 죽으면 그를 슬퍼하거나 동정하기보다는 앞으로 심심해서 어떻게 할지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환경도 엉뚱하고 인물들도 엉뚱하며 덩달아 작가도 엉뚱하다. 그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이다.
“허풍담 -- 거짓으로도 들릴 수 있는 사실, 혹은 그 반대”
그 엉뚱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풀어 놓는 요른 릴의 솜씨와 재치 때문에, 또 인물들의 생생함 때문에 허풍스러운 이야기들은 묘한 현실성을 얻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이 “살다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훔친 경험담”이라고 말한다. 작품 내부에서는 “전적으로 사실인 이 북극 허풍담을 기록하는 자는……”이라는 식으로 작가 자신에 대해 너스레를 떨고, 어떤 이야기에 대해서는 사냥꾼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정확성’과 ‘세부 사실’을 덧붙였기 때문에 더 진실해졌다는 식의 역설을 펼치기도 한다.
“바로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라고! 그걸 좋아하니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대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없는 자유’다. 바로 이 사냥꾼들이 자진해서 북극 생활을 선택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산 하나하나, 계곡 하나하나, 피오르 하나하나, 빙산 하나하나가 놀라운 선물을 감추고 있다. 고독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짓누르는 것은 드문 일이고, 대개의 경우 고립은 경이로운 자유의 감정을 준다. 북극 지방은 생명력과 변화로 가득하다. 원소 말고는 장애물이 없고, 자연 말고는 섬길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저들끼리 정하는 법 말고는 따로 법도 없다. 이 꼭대기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단지 처한 환경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할 뿐이다.”
이 사냥꾼들은 나머지 문명 세계를 “자리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서로 등을 밟고 올라 다니는 섬”이라고 비웃고, “저 아랫동네 정글의 공무원이나 다른 원숭이들의 얼굴을 안 봐도 되기 때문에” 북극에 산다고 말한다. “자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어 장치를 가지고 있다. 제아무리 센 자라고 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용수철을 가지고 있다”며 자연의 용수철에 비극적으로 튕겨 나간 반자연적 인물의 최후에 대해 일갈하기도 한다.
하마터면 사장될 뻔한 걸작, 덴마크의 모든 가정에 있는 책
어려서부터 늘 탐험을 동경하던 요른 릴은 19세에 라우게 코크Lauge Koch 박사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 북극 생활을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소포와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문명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16년을 지내면서, 그곳의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운 체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된다는 생각도 없었고, 자신이 세계적 명작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허풍담skrøne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였다. 하마터면 묻힐 뻔한 그의 걸작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어떤 뻔뻔한 책 장수 덕분이었다.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 책을 무게로 달아 파는 그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겼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구 500만의 덴마크에서 출간되는 책마다 25만 부 이상이 판매되고, 때로는 50만 부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덴마크에서는 요른 릴의 책이 없는 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개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