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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유럽 문학 작품을 발굴하여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프랑스 문학 기획 부분의 세 번째 시리즈로 작가 필립 지앙을 소개한다. 『개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기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의 르네 벨레토에 이은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작가 필립 지앙은 진실된 글을 쓰는 위대한 작가로 일컬어지며, 이 세계와 자기 자신까지도 미칠 듯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관대한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필립 지앙은 이 책 『37.2도 아침』으로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지만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웬만한 영화 매니아라면 이미 그의 작품 세계를 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영화 「베티 블루」의 원작자이며, 이 책은 그 영화의 원저이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상영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비디오로 대여되고 있으며, 여주인공의 강렬한 분위기의 포스터는 많은 독자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 작품의 출판은 상당히 늦은 셈이다.
이 책에는 영화에서 보여 주지 못한 필립 지앙의 특유한 리듬과 색깔, 그리고 빛과 감동과 지혜의 광기가 내재되어 있다. 마음의 감동과 영혼의 폭발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극히 드문 방법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문장을 쓰는 그는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순수하고 적나라하게 행복과 비극을 이야기한다. 『37.2도 아침』은 이러한 그의 문체가 면면히 스며들어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걸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35살의 독신 남자로 모텔을 돌봐 주는 일종의 매니저일을 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검은 머리의 미인 <베티>를 만나게 되고, 이것은 그들의 운명을 평범한 일상에서 끌어내어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베티는 그의 방갈로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에게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지만, 그녀는 항상 무언가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던 중, 우연히 그가 쓴 글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긁적거린 내용의 글로, 이제는 몇 개의 수첩 속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밤새워 그것을 다 읽은 베티는 그의 굉장한 재능에 눈뜨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그 이후 터무니없는 사장의 지시에 대한 반발로 방갈로에 불을 지른 베티로 인해, 그들은 그곳을 떠나 그녀의 동생 리자가 사는 집으로 옮겨 오게 되고, 그곳에 정착하자마자 베티는 그의 작품을 타이프쳐서 몇몇 출판사에 보내지만 모두 다 퇴짜를 맞는다. 여기에서 그녀의 광기가 폭발되어 그들에게 복수를 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베티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너무나 그녀를 사랑하는 까닭에 두고 보기만 하던 그는 베티를 고소한 출판업자를 위협하여 그녀를 빼낸다.
그러던 중 리자의 남자 친구 에디를 알게 되고, 그 인연으로 그의 가게 일을 돕게 되지만 베티 의 잠재워지지 않는 광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을 때, 에디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네 사람은 그곳으로 떠난다. 피아노 가게를 하던 에디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에디는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하는데, 그와 베티가 가게를 맡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남게 된 두 사람은 새 생활에 만족스러워하면서 얼마간은 잘 지내지만, 어느 날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시 시작된 그녀의 발작으로 그들의 생활은 파국으로 접어든다.
베티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는 그녀의 즐거움을 위해 심지어 도둑질까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추스리지 못하고 스스로 머리칼을 자르더니, 결국 자신의 한쪽 눈을 뽑아 버리는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이 사건은 그에게 큰 심적 타격을 주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베티의 <작가> 타령에 심한 거부감을 느껴 그 동안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하던 그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베티가 입원한 병실을 날마다 드나들던 어느 날 어떤 출판업자로부터 <당신의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고, 면회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병실로 뛰어든 그는 베티가 침대에 가죽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담당 의사의 방으로 가서 그를 위협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면회 금지 조치뿐이었다. 그 후 그는 여러 번 베티를 만나기 위해 병원 앞을 서성거렸지만, 남자 간호사들에게 발각되어 쫓겨나곤 했다.
고독과 그리움에 미칠 것 같았던 그는 차를 타고 무작정 길을 떠나 어느 바닷가에 도착한다. 길을 걷다가 모래 위에 쓸려와 있는 살점이 뜯겨 나간 물고기를 발견하고, 그 물고기의 모습을 통해 베티를 본다.
<예전에는 거의 별과 같이 반짝거리던 네가 한쪽 구석에서 이렇게 썩어 가는 꼴이 되어 있다니, 이거야말로 네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이 아니겠느냐? 너는 혹시라도 태양을 향해 마지막으로 지느러미를 헤적이면서 물 속 깊숙이 컴컴한 어둠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느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물고기를 모래밭에 묻어 준다.
그 다음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실행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다.
필립 지앙의 작품은 이제까지 우리가 접했던 프랑스 문학 작품과는 다른 색다른 분위기와 색깔을 지니고 있다. 퇴폐적인 듯하면서도 은근하고,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황폐한 듯하면서도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그래서 그 향기를 쉬이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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