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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수집가의 여행(Far and Away)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
김명남
열린책들
2019년 01월 25일
연장정 / 760 면
978-89-329-1938-6 03900
역사 / 여행
25,000
 
 
 

『한낮의 우울』,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의 가슴 벅찬 세계 여행

<세상이 한 권의 책이라면 (…) 나는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다 읽고 싶었다. 나는 길을 나섰다. 이 세상에 벌어진다면 좋을 것 같은 변화들을 목격하고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한낮의 우울』,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저자이자 PEN 아메리칸 센터 회장 앤드루 솔로몬이 세계 곳곳에서 변화를 겪는 장소들을 기록한 글을 묶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중국, 리비아, 미얀마, 그린란드 등 1980년대 말부터 25년간 여행했던 28곳의 현장을 담은 매혹적인 여행기다. 정치, 예술, 음식, 심리학, 인류학을 넘나들며 왕성한 호기심으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와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앤드루 솔로몬은 전미도서상(2011)과 전미비평가협회상(2012)을 연달아 수상한 대단한 필력의 작가이자, 유튜브 조회 수 1200만을 넘길 만큼 감동적인 연사로도 유명하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이력은 프로필에서 곧잘 간과된다. 솔로몬은 실제 지구상에 알려진 196개국 중 83개국에 가보았고, 『뉴요커』, 『뉴욕 타임스 매거진』, 『트래블+레저』 등 여러 유수의 매체에 글을 써왔다. 이 책은 그가 출간하는 첫 여행기인 동시에, 시대를 증언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명히 드러내는 저술이다. 
<경험 수집가>를 자처하는 저자답게 그의 여행은 그저 편안한 자료 조사나 눈 관광에 그치지 않는다. 세네갈의 우울증 치료 의식을 알기 위해 직접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거나, 샤먼 부족을 만나기 위해 몽골 소년을 길잡이 삼아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메트로폴리탄이 국립 고궁 박물원의 문화재를 유치하려고 갔던 취재에서는 분노한 타이완 민중한테 얼굴을 얻어맞기도 한다. 남아공 예술가, 캄보디아 학살 생존자, 그린란드 토박이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솔로몬이 수집한 가슴 벅찬 경험들은 여행이 어떻게 한 인간의 운명과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되는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한 개인의 성장담, 또는 변화하는 세상의 초상 

『경험 수집가의 여행』은 한 인물의 내면적 성장 스토리인 동시에, 우리 세계가 변화해 온 기록이다. 솔로몬의 유년 시절은 여행에 관해 두 가지 경험이 교차한다. 루마니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가 그에게 영원한 안식처는 없다는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면(<만에 하나 집단 학살이 맨해튼 중심가를 위협하더라도, 진작 여권을 챙겨서 기꺼이 나를 받아줄 곳으로 떠날 준비를 갖춘 사람이 되리라>), 어머니가 가져온 세계 각국 민속 의상이 그려진 클리넥스 통은 그에게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은 열망을 키워 주었다.
그리하여 솔로몬(1963년생)은 20대 중반 모스크바를 첫 여행지로, 50대 초반 호주 대보초의 마지막 여행까지 25년간 7대륙을 누빈다. 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쿠데타를 겪으면서 바리케이드까지 진군해 온 탱크를 내려다보았던 일, 캄보디아에서 내전 생존자로부터 극적인 체험을 취재했던 일, 불행히도 꼼짝없이 배에 갇혀 빙산만 잔뜩 구경했던 남극 모험, 최고 지도자 카다피의 관저로 초대받은 일 등, 도저히 한 사람의 일생에 모두 담겼다고 믿기 힘든 경험들을 수집한다. 유년 시절 <집>에 대한 불안과 <먼 나라>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던 소년은 어느덧 진정한 여행가로 훌쩍 자랐다.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묶인 여행기를 차례대로 읽노라면, 이 책이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솔로몬의 여행기 속에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정치·문화적 변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련일 때 처음 방문했던 나라가 자본주의 러시아가 되고, 1999년에 찾았던 그린란드의 동토 지대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불과 10년 사이에 농장이 되었다. 그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세계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화가들은 이제 전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되었고, 처음에는 자신의 성 지향성을 감추고 여행하던 작가 자신이 나중에는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느라 전 세계를 여행한다. 
게다가 솔로몬이 방문했던 여행지에는 세계 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이 펼쳐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소련 해체 전후의 모스크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붕괴 직후의 남아공, 군부와 문민정부의 갈림길에 선 미얀마, 여전히 내전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르완다와 캄보디아 등등. 솔로몬은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 위에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들이야말로 직접 역사를 만들어 가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들이다.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

솔로몬은 서문에서 일종의 여행 예찬론을 펼친다. 그가 보기에, 여행은 단순히 즐거움 이상이다.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연습>이다. 그는 자신이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고백한다. 세계 곳곳의 예술가들과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고, 태평양 섬의 원주민들 앞에서 댄스를 선보이며, 내전의 상처를 들려주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솔로몬은 고백하길, <그 숱한 여행에서 나와는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고, 그럼으로써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전작 『부모와 다른 아이들』(정신 질환, 장애, 트랜스젠더 등 예외적인 정체성을 가진 자녀를 둔 가족들의 이야기) 역시 그가 경험했던 숱한 여행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솔로몬은 그 책을 <인간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단 하나의 존재 양식만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의 연장이었다>고 밝힌다.
솔로몬은 여행이 정치적으로도 유용하다고 믿는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베트남에 대해 더 잘 알았더라면 베트남전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가 국민들에게 여행을 장려하는 일이 <학교 출석, 환경 보호, 국가적 절약을 장려하는 것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솔로몬은 말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젊은이들에게 외국에서 의무적으로 2주간 체류하도록 한다면, 모르면 몰라도 세계 외교 문제의 3분의 2는 해결될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느냐, 체류 중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세상에는 다른 장소들이 있고 그곳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삶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맛보고 싶다면

희귀한 동전을 모으거나 오래된 장서를 수집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솔로몬은 인생의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모조리 읽고 싶다면 경험을 수집할 것을 권한다. 월터 페이터의 말처럼 <인생의 목적이란 경험의 결실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이므로. 물론 평범한 독자들이 솔로몬처럼 수십 개국을 돌아다니는 특권을 누리기는 힘들다. 여행지에서 수도로 진격하는 쿠데타군의 탱크를 목격하거나, 독재 정권의 일간지 1면을 장식하거나, 망망대해에 홀로 빠져 가족을 떠올리는 경험을 하는 건 보통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결의 역사를 지닌 사람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세계는 넓어질 수 있다. 
비단 여행만이 아니다. <여행을 그만둘 수는 없다: 다 마셔 버리리라 / 삶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솔로몬이 인용한 테니슨의 이 시 한 구절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녹록치 않은 여정에서 발길이 무뎌지는 독자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는다. 죽기 전에 <삶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세상의 온갖 모험을 수집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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