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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상)(Бесы)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Фe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박혜경
열린책들
2020년 01월 30일
견장정 / 328 면
978-89-329-2011-5 04890
세계문학 / 러시아문학 / 장편소설
11,800
 
 
 

  
도스또예프스끼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인 『악령』,
완성도 높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 『악령』이 새로운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자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악령』에 나타난 분신 테마 분석」 등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한림대학교 노어노문학과의 박혜경 교수다. 『악령』은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백치』, 『미성년』과 더불어 도스또예스끼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성서에 등장하는 돼지 떼에 들린 <악령>들처럼 러시아를 휩쓴 서구의 무신론과 허무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러시아의 어느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이다. 수수께끼에 싸인 젊은 귀족 니꼴라이 스따브로긴과 그를 둘러싼 비밀 혁명 조직의 일당들이 초래하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서구와 러시아, 자유주의와 허무주의, 무신론과 인신(人神) 사상,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 세대 간의 갈등, 구원과 속죄의 문제 등 당대 러시아의 주요 화두들과 도스또예프스끼가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이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869년 모스끄바에서 실제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이었다. 모스끄바의 대학생 네차예프가 당시 대학의 몇몇 동료 학생들을 모아서 급진적인 비밀 혁명 조직을 만들었는데, 조직의 일원인 학생 이바노프가 이 조직을 탈퇴하려 하자 나머지 조직원들과 함께 그를 살해하고 교내 연못에 던져 버린 사건이었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악령』을 구상하게 되었고, 본래 이 작품은 서구 사상을 신봉하는 허무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 팸플릿>으로 집필될 예정이었다. 작가 스스로 <경향적인 작품>으로 구상했다고 밝혔듯이 초기 구상 단계에선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던 이 소설은, 이후 대대적인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을 뛰어넘는 철학적, 종교적, 심리적인 깊이를 지닌 형이상학적 소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만큼  『악령』은 정치적인 화두와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긴밀하게 엮어 내고 있는 작품으로, 당대 러시아의 사상적 지형과 인간 본성의 심연을 탐구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비평가 어빙 하우는 『악령』을 가리켜 <정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꼰스딴찐 모출스끼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손꼽았다. 특히 이 작품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악령』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직접 공연을 연출하여 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혜경 교수는 여러 번의 공 들인 수정 작업을 거쳐 까다로운 도스또예프스끼의 문장들을 생생하게 읽히는 우리말 번역으로 유려하게 옮겼다. 번역 원본으로는 F. M. Dostoevskii, Besy (Moskva: Khudozhestvennaia literatura, 1990)를 사용했다.

러시아를 휩쓴 무신론과 허무주의의 악령들이
빚어내는 악(惡)의 비극

 ■ 도입부의 줄거리
소설은 러시아의 어느 지방 소도시의 가장 부유한 지주인 바르바라 스따브로기나  부인과 그녀의 후원을 받는 지식인 스쩨빤 베르호벤스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시인이며 1840년대를 대표하는 낭만적 자유주의자인 스쩨빤 선생은 바르바라 부인의 외동아들인 니꼴라이 스따브로긴의 가정교사로 처음 부인의 집에 초빙된 이후, 거의 20년 동안 그녀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면서 이 집에서 머물게 된다. 어린 시절 스쩨빤 선생의 밀착된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스따브로긴은 귀족 학교에 진학하면서 오랫동안 이 도시를 떠나 있게 되고, 뻬쩨르부르끄에서 수수께끼에 싸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20대의 청년이 되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젊은 귀족 청년의 출현으로, 그동안 특별한 일이라곤 없던 이 평범한 소도시가 조금씩 기묘하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외모,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금세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지만, 동시에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혐오감을 느끼며 그의 얼굴이 <가면>처럼 보인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돌연 잠복해 있던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듯, 그는 갑자기 아무도 이해 못할 독특한 기행들을 일삼기 시작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어느 신사의 코를 잡아당기거나, 어느 부인에게 돌연 키스를 하거나, 지사의 귀를 깨물어 버리기도 하는 등…… 정신 착란을 의심케 하는 이상한 스캔들로 온 사교계는 경악과 흥분에 휩싸인다.
이후 스따브로긴은 요양차 곧 이 도시를 떠나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온전해진 모습으로 이곳에 돌아오게 된다. 바르바라 부인은 아들의 귀환을 몹시 기대하며 그의 혼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지만, 그 무렵 도시에는 스따브로긴과 이곳에 사는 미친 절름발이 여인인 마리야 레뱟끼나와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그가 이곳에 모습을 나타내고, 그의 어린 시절 교사인 스쩨빤 선생의 아들이자 비밀리에 이곳 혁명 조직의 우두머리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뾰뜨르 베르호벤스끼 역시 스따브로긴과 함께 이 도시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도시 곳곳에서 기묘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 스따브로긴과 허무주의자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음모와 범죄 사건들은 당시 러시아를 휩쓴 허무주의 사상이 초래한 광기와 비극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허무주의자들이란 19세기 중엽 서구의 자연과학과 합리주의에 매료되어 유물론과 무신론을 주창하던 러시아의 청년 집단들을 말한다. 그들은 혁명을 통해 국가를 전복하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했으며, 이는 때때로 <네차예프 사건>과 같이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들의 <아버지 세대>인 1840년대의 자유주의자 스쩨빤 베르호벤스끼의 이야기로부터 이 작품의 도입부를 시작함으로써, 1860년대의 젊은 세대들의 허무주의가 전 세대의 공허한 자유주의에서 배태되었음을 보여 준다.
처음에 이들을 비판하는 정치 팸플릿으로 기획되었던 『악령』이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며 철학적인 색채를 지닌 형이상학적 소설로 의미가 확대되게 된 큰 계기는, 본래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구상되었던 뾰뜨르 베르호벤스끼가 작가가 새롭게 관심을 쏟게 된 인물인 니꼴라이 스따브로긴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게 된 데 있다. 네차예프를 문학적으로 구현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허무주의자 뾰뜨르 베르호벤스끼 대신, 도스또예프스끼는 당시 그가 따로 구상하고 있던 종교적 소설인 『위대한 죄인의 생애』의 내용을 『악령』에 상당 부분 흡수시키면서 그 소설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스따브로긴을 『악령』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스따브로긴은 작중에서 무엇보다 <공포를 모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선악의 분별을 잃어버린 그는,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 어떤 추악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든, 그것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한계나 두려움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언급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끌리며 그를 격렬히 숭배하거나 두려워하곤 하지만, 스스로는 모든 일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과 냉소, 내면의 허무에 좀 먹혀 가며 파멸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밀 혁명 조직의 우두머리인 뾰뜨르 베르호벤스끼가 작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모를 꾸미고 움직이는 실질적인 행동 대장이지만, 그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것은 그의 우상인 스따브로긴이다. 냉혹하고 교활한 모사꾼인 뾰뜨르는 끊임없이 스따브로긴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자신의 수중에 끌어들이려 하고, 자신에게는 없는 그의 재능, 마치 적그리스도의 재능과도 같이 사심 없는 <비범한 범죄 능력>을 지닌 스따브로긴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욕을 이루기를 꿈꾼다. 반면 스따브로긴은 뾰뜨르를 경멸하며 그의 일당들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그의 음모와 범죄들을 은연중에 암묵적으로 묵인하면서 끝끝내 파멸을 향해 간다.

■ 불멸의 조연들
이 작품에는 뾰뜨르 외에도 <스따브로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사회에 극도의 혼돈을 불러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기를 꿈꾸는 혁명적 허무주의자인 뾰뜨르 베르호벤스끼를 비롯하여, 신에 대항하여 자신의 무한한 자유의지를 천명하고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권총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무신론자 끼릴로프, 민족을 통해 <신>을 찾기를 갈망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아직 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슬라브주의자 샤또프 등은 모두 스따브로긴의 사상과 영혼의 조각들을 반영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성향과 사상을 지니고 있지만, 스따브로긴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며, 당대 러시아의 독특한 사상적 지형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념성은 그들 각자에게 부여된 강렬한 개성을 통해 생생한 구체성을 획득하며 체현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은 무신론과 허무주의에 호의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따브로긴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매력은 세계 문학사에 불멸의 흔적을 남겨, 이후의 작가들에게 문학적·사상적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끼릴로프의 사상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집 『시지프 신화』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삶이라는 것의 기만을 간파하고 완전한 자유를 천명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끼릴로프의 사유를 그는 자신의 부조리 사상과 연결 짓는다.
각 인물들은 스따브로긴이 자신의 삶에 미친 절대적인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따브로긴의 불모성은 그들 중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무엇도 선택할 수가 없게 하며, 그로 하여금 파멸을 맞이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스따브로긴처럼 파멸을 맞게 된다. 이는 19세기 중엽의 러시아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 주는 것으로, 도스또예프스끼가 볼 때 이것은 <러시아 땅이나 민중 문화 전통과의 관계를 상실한> 이들의 숙명적인 처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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