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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Жена ·Три сестры)
안톤 체호프(Антон Чехов)
오종우
열린책들
2024년 02월 20일
견장정 / 240 면
978-89-329-1288-2 04890
러시아 문학
12,800
 
 
 

 
인류의 자랑 안톤 체호프
웃음과 사유가 어우러진 불멸의 명작

<체호프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이다. 그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해준다.> ― 수전 손태그

안톤 체호프의 대표 희곡과 숨은 명작 단편소설을 엮은 선집 『아내·세 자매』가 러시아 문학 교수 오종우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체호프는 19세기 러시아 태생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인류의 예술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작품을 남긴 불멸의 거장이다. 장편소설이 주를 이루던 러시아 문학계에서 단편소설을 독자적인 지위로 끌어올렸으며 현대 연극의 새 장을 열어젖힌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상의 사소한 면면에 주목하는 그의 작품은 누구나 읽기 쉽고 뭉클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동시에, 삶의 고달픔과 수수께끼를 묵직하게 품고 있으며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중기 단편소설 「아내」는 러시아 대기근 시기에 농민 구제 사업을 펼치려는 주인공을 내세워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중요한 작품임에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단편소설이 이번 열린책들판을 통해 소개되어 반가움을 더한다. 「세 자매」는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하나로, 이상을 꿈꾸지만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삶을 그저 인내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십 년간 체호프를 파고든 연구자가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러시아어 원전을 충실히 옮겼으며 한국어의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대답은 할 수 있어도 정답이 없는 질문
숨은 명작 단편소설 「아내」

나는 아내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 ― 85면

「아내」는 대기근과 역병이 러시아를 휩쓴 1890년대 초를 배경으로 농민 구제 사업을 펼치려는 지식인 파벨 안드레예비치와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겪는 부부간의 갈등을 따라가며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파벨 안드레예비치는 저술 활동에 집중하고자 시골 영지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지만 늘 마음이 불편하다. 굶주리고 병든 지역 농민들 탓인지, 집에 도둑이 든 사건 탓인지, 우울한 겨울 날씨 탓인지, 아내와의 오랜 불화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는 특권층으로서 뭐라도 해 보여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압박감에 구호 사업에 큰돈을 기부하기로 하는데,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도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님을 알기에 떳떳하지 못하다.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오데사 출신인 그는 남편에게 여권으로 상징되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기생충>같이 살면서 무료함과 불안함에 <찌들어 죽어 간>다고 느낀다. 그런 그가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왁자지껄한 가운데 구호 활동을 도모하는 저녁 시간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남편과 말다툼 도중 고백한바 나탈리야는 그 일에서 자기 인생을 <정당화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부부에게 타인을 구제하는 일은 잠시나마 자신을 구원하는 일임이 드러난다. 이들은 한심한 부유층처럼 보이기 쉽지만, 체호프의 세계에서 독자가 어떤 인물에게든 경멸감을 느끼기란 어렵다. 무능하고 속물적인 지식인 남편이나 순진한 나르시시스트 아내에게도. 비판하되 경멸감이 들어설 자리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채워 넣는 것이 그의 탁월함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주인공과 달리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체호프 역시 대기근 시기에 의료 활동을 펼치며 농민 구제 활동에 매진했다. 그런 사실에 근거해 어떤 도덕적 우월함을 주장하는 대신 그는 자기 경험을 한 편의 시트콤 같은 단편소설에 녹여 내고, 감탄하거나 불편해서 웃음을 띤 독자에게 어떻게 타인과 함께 <사람답게> 살 것인지 자연스럽게 물으며 그 정답 없는 질문에 관한 사유에 접어들게 한다.

하모니를 이루는 파열음
영원히 상연될 대표 희곡 「세 자매」

시간이 흐르면,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모두 알 수 있을까. ― 212면

「세 자매」는 제정 러시아 말기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출구 없는 현실에 갇혀 점차 꿈을 잃고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프로조로프 일가의 세 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의 일상을 그린다. 막이 오르는 시점은 아버지의 1주기이자 막내 이리나의 명명일인 어느 봄날, 즉 죽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첫 대사를 통해 올가는 1년 전 아버지 장례식 날(과거)의 음울한 분위기를 회상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바로 돌아갈 날(미래)을 꿈꾸며, 매일의 고단한 밥벌이(현재)에 지쳤음을 토로한다. 그렇게 죽음과 삶,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이루는 불협화음이 개시되고 이는 변주와 확산을 거치며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학교 선생인 첫째 올가는 일 때문에 늘 괴로워하면서도 달리 살 방도가 없어 그만두지 못하고 원하지도 않는 교장직에 오른다. 이른 나이에 주부가 된 둘째 마샤는 결혼 생활에 숨 막혀 하던 중 베르시닌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군대와 함께 도시를 떠나간다. 노동이 갑갑한 상황을 타개해 주리라 믿던 셋째 이리나는 막상 일을 시작하자 환멸과 피로만 느끼고, 사랑하지도 않는 투젠바흐와 결혼해 모스크바로 떠나고자 하지만 그마저 좌절된다. 그들은 모스크바로 표상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내내 <모스크바로 가야 해! 모스크바! 모스크바!>(156면)를 외치나 결코 그곳에 닿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모스크바는 언제든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 돌이킬 수 없거나 다다를 수 없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다만 떨쳐 버릴 수 없는 현재를 지고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은 우리 중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 베르시닌의 말처럼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잊힐 운명이고, 체부티킨의 말처럼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올가는 좌절한 채로 좌절한 동생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가야 해!>(213면) 살아가는 것 외엔 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체호프는 등장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좇으며 곳곳에서 절망과 희망이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을 웃음으로 봉합해 슬프고 웃기는, 그래서 삶과 닮은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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