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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책  
 
하심
차석용
열린책들
2026년 10월 05일
견장정 / 248 면
978-89-329-2598-1
경제경영/에세이
24,000 원
 
 
 

28년 최고경영자, <차석용 매직> 너머의 것을 말하다

차석용 회장은 40년 넘게 경영 현장에 몸담고, 그중 28년을 여러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일한 전문경영인이다. 한국 P&G를 네 명으로 출범시켜 2년이 채 되기 전에 흑자와 시장 점유율 1위를 이끌었고, 해태제과에서는 무너진 조직을 추슬러 경영 정상화를 이루었다. 이후 LG생활건강을 18년간 이끌며 매출을 9배 키우고 65분기 연속 영업이익 증가를 기록했다. 각기 다른 기업과 조직문화 속에서도 그가 맡기만 하면 성장을 이어 가, 그의 경영을 두고 사람들은 <차석용 매직>이라 불렸다.

이런 그의 책이 출간됐다. 『하심』은 이미 알려진 성공의 숫자를 되풀이하는 책이 아니다. 차석용 회장이 어떻게 회사를 키우고 위기를 넘겼는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으며 배운 마음가짐을 기록해 두고 뒤이어 살아갈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흔들리는 순간에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했는지, 잘될 때 다가올 위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먼저 내려놓아야 했는지를 차석용이란 한 거인의 삶과 경영을 통해 들려준다. 『하심』은 28년 최고경영자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인 동시에 자신이 지켜 온 신념과 가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삶의 기준을 정리한 책이다.

 

원칙은 결정의 순간에 드러난다

『하심』에서 차석용 회장의 가치와 원칙은 추상적인 주장에 머물지 않는다. 당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기업의 결정적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했고 끝내 무엇을 믿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백억 원이 오가는 인수 협상부터 무너진 조직을 다시 세우는 과정까지, 책에 담긴 경영 비화는 <차석용 매직>을 만든 생각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중 가장 극적인 장면은 코카콜라 인수다. 당시 코카콜라의 한국 보틀링 사업은 3~4년간 적자가 이어진 데다 세 개의 강성 노조가 있어 인수를 둘러싼 우려가 컸다. 최종 입찰을 이틀 앞두고는 경쟁자를 넘어서려면 인수 가격을 400억 원 더 써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의 확신이 객관적인 판단을 넘어선 집착은 아닌지 고민하던 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에게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음 날 마포대교 끝에 차를 세운 구 회장은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과 그것을 해내려는 열정이라고 말했다. 그 믿음은 포기하려던 차 회장에게 다시 결단할 힘을 주었다. 그는 곧장 하얏트 호텔로 향해 밤 10시가 넘도록 코카콜라 측과 협상을 이어 갔고, 이튿날 최종 입찰서를 제출해 인수를 성사시켰다. 한 사람의 믿음이 멈춰 있던 결정을 다시 움직이고 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든 순간이었다.

쌍용제지 인수는 철저한 검토와 직관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준다. 신뢰하기 어려운 자료와 상장기업 공개매수의 전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차 회장은 수십 차례의 협상과 법률 검토를 거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거래 상대의 얼굴과 말에 담긴 진심이었다. 인수 직후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거래가 되었지만, 차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행운이 아니다. 숫자와 논리를 끝까지 검토한 뒤 작동하는, 오랜 경험이 압축된 직관이다. 그는 이를 <첫 2초의 힘>이라 부른다.

해태제과에서는 판단의 출발점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첫 출근 날 차 회장이 발견한 것은 나쁜 실적보다 먼저 무너진 조직의 마음이었다. 그는 회의실을 벗어나 직원들을 만나고 회사 뒤편 삼겹살집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에게는 훌륭한 브랜드들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살렸다. 이후 호두마루와 구운감자, 오사츠가 잇따라 성과를 내며 회사는 정상화되었다.

세 경영 비화는 서로 다른 판단의 기준을 보여 준다. 코카콜라 인수의 배경에는 사람의 믿음이, 쌍용제지 인수에는 철저한 검토 끝에 얻은 직관이, 해태제과 정상화에는 조직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태도가 있었다. 『하심』은 무엇을 결정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그 결정이 어떤 가치와 신념에서 나왔는지를 보여 준다. <차석용 매직>을 만든 것은 한 번의 묘수가 아니라 사실과 논리를 끝까지 살피고, 축적된 경험을 믿으며, 사람의 진심과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태도였다.

 

높이 오르는 법보다, 높은 곳에서 지켜야 할 마음

성공을 말하는 책은 많다. 남보다 앞서는 방법과 빠르게 성과를 내는 기술, 위기를 돌파하는 전략도 끊임없이 소개된다. 그러나 차석용 회장의 글은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간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말하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며, 분명한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 잘못된 방향에는 질문을 던지고, 남들이 지나치는 마지막 5퍼센트를 끝까지 살피며, 나쁜 소식일수록 더 빨리 알리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매일 지키기는 어려운 태도들이다.

이러한 생각은 책 후반에 수록된 <CEO MESSAGE>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차석용 회장이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임직원들과 나눈 짧은 글들은 본래 회사 안에서 함께 읽기 위해 쓰였다. 정식으로 출간된 책이 아니었지만 누군가 파일로 만들어 전하면서 회사 밖으로 퍼졌고, 그의 이름보다 먼저 차석용이라는 경영자를 알린 글이 되었다. 『하심』에는 그 가운데 열여섯 편을 골라 다시 실었다.

<CEO MESSAGE>는 거창한 경영 이론보다 일하는 사람이 매일 마주하는 질문을 다룬다. 조직에서는 직급이나 영향력보다 사실과 논리가 더 큰 권위를 가져야 하며, 명확한 원칙은 판단을 늦추는 제약이 아니라 빠른 결정을 돕는 나침반이라고 말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잘못된 결정에 침묵하지 않는 태도, 작은 차이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을 숨기지 않는 정직함도 강조한다. 앞부분이 차석용이 살아오며 만난 사람과 시간,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CEO MESSAGE>는 그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을 대했던 방식의 기록이다.

『하심』이라는 제목도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배움 앞에서 겸손하며, 삶 앞에서 겸손하려 애써 온 마음을 뜻한다. 차석용은 자신을 여기까지 이끈 것이 혼자의 능력이나 거대한 성공이 아니라 삶에 소나기처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고 돌아본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받은 믿음과 가르침을 다시 다음 세대에 건네고자 한다.

『하심』은 더 높은 곳에 오르는 방법보다 그곳에서도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자세, 작은 일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성실함과 삶 앞의 겸손. 눈에 띄는 성공의 비결은 아닐지라도 오래가는 사람과 기업을 만드는 힘은 결국 이러한 기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하심』이 전하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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