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전체를 통해서 융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꿈과 그 꿈이 상징하고 있는 것을 통해 무의식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인간으로서의 온전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상징』은 자신의 연구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 의해 이해되기를 바랐던 칼 융의 소망이 그대로 실현된 역작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없는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사고의 바탕이 되는 원시적 감정, 공포, 원시적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융은 이 책에서 그 무의식의 세계를 검증한다. 

무의식 세계의 언어가 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이라고 믿었던 융은, 그 상징을 통해서 우리의 꿈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적 자아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현실의 길라잡이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반복, 각인된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이 어떤 기본적인 인간 상황을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라고 말하면서 융은 그러한 이미지를 통한 인간의 자기 이해로부터 온전하고 생산적인 삶이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독자는 융과 그의 동료 학자들의 사고의 궤적을 따라 자신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됨과 동시에 인간 삶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이해에 이를 수가 있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 「무의식에의 접근」은 융 자신이 집필한 부분으로, 일종의 입문서적인 성격의 이 글은 독자들에게 무의식의 세계와, 원형과 상징, 그리고 꿈의 세계를 보여 줄 것이다. 제2부 「고대 신화와 현대인」은 조셉 헨더슨 박사의 글로서, 고대의 신화, 전설, 원시적인 제의에 원형적인 양식이 있음을 예시해 준다. 제3부 「개성화의 과정」에서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박사는 한 개인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인지하고, 존중하고, 적응해 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제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은 회화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대하여 인간이 되풀이해서 느껴 온 것을 아니엘라 야페 박사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을 집필한 욜란드 야코비 박사는 흥미롭고 성공적이었던 사례사의 분석을 통해 꿈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500여 개 이상의 삽화는 융의 사상에 대한 독특한 <설명서>의 역할을 하면서 꿈의 본질과 그 기능, 현대 예술의 상징적 의미, 일상 생활 경험의 심리학적 의미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삽화들은 융의 사상을 더한층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면서 『인간과 상징』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과 상징』의 기초 작업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70년대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20여 년에 걸쳐 세 번 이상이나 번역과 수정이 가해진 이 책의 출간은, 결정판을 내고자 한 역자와 출판사의 의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책을 꾸준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외서의 경우 좀더 정확한 번역으로 원저에 대한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페이퍼백(흑백 삽화)과 하드 커버(컬러 삽화) 두 판형의 『인간과 상징』 원서 가운데 융 사상의 이해에 훌륭한 길잡이 역할과 설명서 역할을 하는 500여 개의 삽화가 충실히 담겨진 하드커버 본을 선택하여 저작권 계약을 맺어 원서의 판본에 수록된 모든 자료들을 그대로 실은 『인간과 상징』을 발간하게 되었다. 충실한 번역과 공들인 편집, 열린책들의 의욕이 돋보이기도 한 이 『인간과 상징』은 무의식의 상징과 그 이미지에 중점을 둔 칼 융의 뜻에 따라 그 이미지와 관련된 사진 자료를 모두 수록하여 텍스트와 연계해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마 이것이 다른 책들과 이 책을 구별시켜 주는 차별점이 될 것이다. 

1996 한국일보 <한국출판문화상 출판상>

지은이  칼 융
스위스 케스빌에서 태어나 바젤 대학과 쮜리히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였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기초자인 칼 융(1875∼1961)은 의학, 고고학, 신비주의,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조적 사상가이다.
정신분열증 연구에 정신분석의 방법을 최초로 적용한 융은 1906년에서 1913년까지 프로이트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유아성욕론과 본능적 충동의 강조, 그리고 정신 내용을 개인적 경험에만 한정시킨 것 등에 대해 반대하고 그와 결별하였다. 대신 융은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종족적인 경험에 의해서도 인격 형성이 영향을 받으며, 성적 욕구보다도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생각 등을 기초로 분석심리학의 이론을 체계화시켰다.
치료 기법의 측면에서 건강하고 정상적인 심리학을 강조하였던 융은 신경증의 증상들이 정상적인 심리 과정의 교란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개인으로 하여금 그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의 잠재적 능력을 알아차릴 수 있게끔 도와 줄 수 있는 무의식적 영향을 밝혀 내어 개인의 어려움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융의 치료 방법이었다.
인간 정신의 연구에 그가 크게 기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의 영혼에는 이른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가설이었다. 개인적 경험과는 상관이 없이 조상 또는 종족 전체의 경험 및 생각과 관계가 있는 원시적 감정, 공포, 사고, 원시적 성향 등을 포함하는 무의식인 이 <집단 무의식>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이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부각되었다.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반복, 각인된 신화, 전설, 꿈, 환상 등은 어떤 기본적인 인간 상황을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라는 융의 생각은 심리학 뿐만 아니라 예술, 과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정신분석의 이론』, 『심리학과 종교』, 『영혼을 찾는 현대인』, 『심리학적 유형』, 『미발견의 자아』 등이 있다.

옮긴이 이윤기
1947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했다. 1977년 단편소설「하얀 헬리콥터」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 겸 소설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중단편 소설집「하얀 헬리콥터」, 짧은 소설「외길보기 두길보기」, 장편 소설「하늘의 문」「햇빛과 달빛」이 있고, 번역서로「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전날의 섬」(움베르토 에코),「기적의 시간」(보리슬라프 페키치),「종교의 기원」(지그문트 프로이트),「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