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존재했던, 잃어버린 유토피아에 관한 우화
<바퀴>라는 단어조차 없는 부족에게 비행기며 우주선이 선보이고, 문자가 없던 종족에게 컴퓨터가 들어올 때, 그 부족이 받는 문화적 충격은 우리가 우리보다 훨씬 더 발달한 외계 문명을 만났을 때 받을 충격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키리냐가>는 바로 이러한 문화적 충격에 의해 무너진 아프리카의 한 부족 <키쿠유> 원주민 들이 자신의 전통 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구 밖 소행성에 건설한 <키리냐가>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구현한 유토피아를 묘사한 소설이다(본서의 제목이자 배경이 되는 행성인 <키리냐가>는 실제로 케냐에 있는 산 이름으로, <키쿠유 족>은 이 산을 자신들이 믿는 신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 <키쿠유> 족의 정신적 지도자 코리바는 자신의 부족을 전통적 삶의 방식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코리바의 세심한 노력으로 키리냐가는 키쿠유 족의 낙원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키리냐가는 변질되고 코리바가 꿈꾸었던 키쿠유의 유토피아는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키리냐가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비록 작가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소행성 키리냐가에 대해서는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행성이 다름 아닌 바로 유럽 인들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코리바가 자기 부족에게 그토록 유럽 문명을 멀리하라고 역설했던 바로 그 장소가 유럽 인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유지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이처럼 전통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서구 문명의 혜택 위에 서 있는 키리냐가의 행보는 위태롭기 그지없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코리바 개인에게도 태생적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전통 수호를 외치는 코리바마저도 컴퓨터로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통제하는 서구 문명의 수혜자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이미 서구 문명 속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서, 비록 겉으로는 서구 문명이 키쿠유 족에게 미친 해악을 비판하지만, 그 자신의 사상 자체가 이미 유럽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 대표적인 일례가 서구 문명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유럽 문명의 혜택과 키쿠유 전통의 보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것을 자기 부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식 교육을 받고 그들의 문명 혜택을 입은 코리바에게 전통의 완벽한 수호가 아니면 타락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크게 이상할 바가 없다. 하지만 키리냐가를 키쿠유만의 완벽한 유토피아로 만들고, 이를 위해서 키리냐가를 고립시키겠다던 코리바 자신은 정작 유럽의 과학 기술에 의지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서구 문명의 배척을 외치는 모순은 이미 키리냐가의 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알고 있던 코리바는 키리냐가의 보존을 위해 갓난아이를 죽이고, 한 여자아이를 자살로 몰고 가고, 청년들을 허허벌판으로 내쫒고 심지어는 가뭄을 내려 부족 전체가 고통받게 하면서 키리냐가를 외부와 단절, 정체시키려 한다. 하지만 코리바에게 저항하는 마을 장로들의 말처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리오. 결국 키리냐가는 마을 사람들의 뜻대로 발전하게 되고 아웃 사이더가 된 코리바는 키리냐가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내가 코리바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의 행동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키리냐가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고민이 많았던 사람은 바로 코리바였으리라. 코리바는 유럽의 문명 속에서 생활했었고, 글을 읽을 줄 알고, 외국어를 할 줄 알며, 컴퓨터를 다룰 수 있었다. 케냐 정부를 움직여 결국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과 정열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부족을 위해 포기했다. 하늘을 날 수 있지만, 하늘 맛을 보았지만 날개를 접고 더 이상 날지 않은 새였던 것이다.
만약 코리바의 말대로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면, 키리냐가에서 코리바는 행복하지 않으므로 키리냐가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으리라. 그렇다면 유토피아가 아닌 땅을 포기한들 무엇이 아까우랴! 코리바가 키리냐가를 떠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런지.
<키리냐가>는 (수상 여부와 작품의 질 사이 관계는 별개라 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 소설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오게 된 동기에는 어느 정도 우연성이 내포되어 있다. 1987년 당시, 올슨 스콧 카드Orson Scott Card는 공유 세계shared-world에 대한 단편 선집인 [유토피아Eutopia]를 기획하면서 작가들에게 글을 부탁한다. 이때, 카드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소행성들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작가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그 배경 조건으로 내걸었다.
첫째는 자신이 선택했던 곳이 싫어진 사람은 그 누구라도 언제든 <헤븐>이라는 지역에 가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빅 브라더에 대항하는 반란의 소지를 없애고 유토피아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유토피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면 되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이를 방해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두 번째로는 외부인이 아닌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외부 관찰자 바라본 겉핥기식 여행기가 아닌 내부인에 의한 진지한 고민을 위해서였다.
당시 아프리카, 특히 동부 아프리카에 심취해 있던 레스닉은 이러한 카드의 제안을 받고 키쿠유 족의 유토피아에 대해 쓰기로 결심한다. 이 글이 본서의 두 번째 편인 [키리냐가]로서 레스닉에게 최초의 휴고상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 이후 레스닉은 키리냐가의 후속편들을 계속 쓰기로 마음먹고 대략 한 해에 한 편 꼴로 단편을 발표, 비평가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된다. 결국 우연히 카드의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한 단편이 결국은 10편의 연작 소설로 완성된 [키리냐가]는 현재까지 발표된 과학 소설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역사적인 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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